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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AI 챗봇이 친구·연인 된다…K팝 소통에도 기여할 것"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지난해 SM 인수전 이후 오랜만에 국내 공식 행사에 등장했다. 그는 저작권 관련 행사에서 "K팝과 인공지능(AI)의 접목은 K팝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만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 세계 총회에서 한 특별 기조 연설에서 "AI 챗봇은 조만간 우리 인간 저마다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연인까지도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수만은 "저는 AI 챗봇 빌리버(Believer)"라며 "K팝과 AI의 접목은 제가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컬처와 테크놀로지의 융합이며, 셀러브리티와 프로슈머(생산자 겸 소비자)인 팬과 더 길고 더 폭넓은 전면적인 만남을 예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AI와 챗봇의 기술이 빛과 같은 속도로 창작자와 소비자 간의 소통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며 "인간과 똑같이 생긴, 혹은 더 매력적인 외모와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간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팬들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대답해주고, 창작자들을 대신해 팬과 소통해주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그는 "AI 챗봇은 이미 텍스트 생성, 음악 작곡, 이미지 창작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셀러브리티와 팬들의 만남을 매개하는 AI 기술의 진화에 맞춰 콘텐츠 산업자들도 빠르게 비즈니스 구도를 만들고, 경쟁력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수만은 지난해 SM 인수전 이후 주로 해외를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에 집중해왔다. 그가 국내 연단에 선 것은 지난해 8월 '2023 동아시아미래포럼'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이수만은 국내 공개 행사에 나선 것을 비롯해 A2O엔터테인먼트라는 상표를 출원하고 송캠프를 준비하는 등 최근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수만은 "저는 어릴 때 아이돌 가수였지만, 원래 이공계 학생이었고 컴퓨터나 기계를 좋아하며 로봇 세상을 꿈꾸고 컴퓨터 엔지니어링 석사학위를 받은 청년이었다"며 "그런데 노래를 더 좋아하다 보니까 다시 어느새 가수로, 음악인으로, 프로듀서가 돼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집안이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수로서 성공을 거둬 꽤 큰 수입이 생기자 부모님도 제가 노래하는 걸 반대하지 못하셨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되돌아봤다. 이수만은 "저는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고, 작사·작곡을 하고, 프로듀싱을 하고, SM이라는 기업을 만들어 가요계를 산업화하고, K팝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한국의 아이돌 산업을 세계화하는 여정을 거쳐 왔다"며 그 과정에서 지적 재산권은 저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돼줬다"고 말했다. 이어 "K팝은 제작자·프로듀서의 초기 투자 자본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분야"라며 "무대에 데뷔하기 전까지 아이돌 지망생을 발굴·육성하는 수년의 기간을 필요로 한다. 저작권은 이러한 때에 작사·작곡가와 가수들의 활동에 대한 권리와 물질적 대가를 보호해 주고 그들의 활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수만은 AI의 발전에 따라 ▲ 저작권 침해 ▲ 불법 복제 및 배포 ▲ 표절 ▲ 창작물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로 노출 ▲ 창작자의 경제적 손실 등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를 방지하고자 "명확한 저작권 법규가 제정돼야 하고 저작권 침해 방지 기술의 개발과 세계 기준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저는 AI 챗봇과 아바타·로봇 등에게 일종의 '주민등록증', 즉 ID가 발급돼 '실명제'화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1926년 창립돼 전 세계 116개국 225개 저작권 단체를 회원으로 둔 CISAC 관계자들이 국제 주요 저작권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서울에서 CISAC 총회가 열리는 것은 2004년 이후 20년 만으로, 이번 총회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주관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축사를 통해 "2008년 제가 당시 장관을 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은 저작권 감시 대상국으로 USTR(미국무역대표부)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던 나라였다"며 "저는 2008년 한 해 동안 우리 국회에서 이 저작권에 관련된 모든 법안을 새로 개정하고, 또 문체부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만들어 저작권 (위반) 단속 활동을 했다. 당시는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가 굉장히 많이 이뤄질 때라 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1년 동안 대한민국의 저작권(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09년 1월 1일 대한민국은 저작권 감시 대상국에서 해제됐다"며 "대한민국은 이제 저작권 청정국이 됐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과거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은 해외에서 저작물을 많이 가져다 쓰는 것으로만 생각했고, 우리의 문화 상품이 해외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 이후 10여년 간 노력 끝에 우리의 K팝, K-컬처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영화·드라마·가요·문학·미술·음악·무용 등 전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의 문화가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장관은 그러면서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국경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저작물이 오가면서 세계 저작권 단체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세계적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확산, AI 발전과 같은 새로운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저작권 규범을 모색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도 창작자가 투명하고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CISAC 회장이자 스웨덴 유명 그룹 아바(ABBA)의 멤버인 비에른 울바에우스는 영상 축사를 통해 "한국은 의심할 여지 없는 문화 강국으로, 전 세계에서 많은 찬사와 부러움을 받고 있다"며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K팝 작곡·작사가 등의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크리에이터가 일거리를 찾고 성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한국에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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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47)<br>500년 세월 가로질러 夢心의 의미명가의 조건, 남원 몽심재(夢心齋) 우리는 무엇을 명가(名家)라 하며 명문(名門)이라 이르는가 지리산 골골이 짙은 숲들을 지나 남원 견두산 자락 단아한 고택서 죽산박씨 종가의 격조는 물론 명가의 조건을 새삼 되돌아 본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신파극단 취성좌(聚星座)가 서울 단성사에서 공연할 때다. 여배우 이애리수(1910~2009)가 막간 무대로 나와 이 노래를 불렀다. 갑자기 객석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삽시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훗날 남인수가 불러 국민가요가 되었던 <황성옛터>, 본래의 노래 제목은 <황성(荒城)의 적(跡)>이다. 전수린이 작곡하고 왕평이 작사하였다. '황폐한 도성의 흔적', 개성 만월대를 보고 지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망해버린 왕조 고려에 투사했으리라. 허물어진 성터가 주는 영감은 벼랑에 폭포수 쏟아지듯 망국의 조선사람들에게 번졌으니, 일제가 서둘러 금지곡으로 지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잡초 우거진 도성 터, 이것이 어디 개성의 만월대에 그치겠는가. 흥망성쇠의 왕조에 그치겠는가. 몽심(夢心)에서 원불교의 공심(公心)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리산 골골이 어둡고 짙은 숲들을 지나 남원의 견두산 자락에 이르면 고즈넉한 마당 단아한 고택이 나온다. 남원 몽심재, 내 여기 이르러 떠올린 것이 '황성옛터'다. 황장목 붉은 기운 틈틈이 땡볕 피해 건너편 대나무들은 고개를 숙이는데 영웅호걸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경사를 따라 지은 고옥의 자태가 여전히 곱지만, 방초의 격조함은 어찌할 수 없다. 말끔하게 정리해둔 고택의 모퉁이, 한 시기 번영했던 영화의 흔적들만 수북하다. 길 건너 풀벌레 소리 요란하니 잠시 마루에 앉아 머리를 기댄다. 감은 눈 깊은 곳으로 누구실까. 초연한 선비 한 분이 몽심재의 마당을 가로질러 온다. 흰 도포자락 휘날리는 걸음걸이가 성큼성큼하다. 이윽고 노래 한편을 읊는다. "격동류면원량몽(隔洞柳眠元亮夢), 등산미토백이심(登山薇吐伯夷心)". 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을 꿈꾸는 듯하고,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의 마음을 토하는 것 같구나! 고려말 유신 송암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싯구다. 박문수가 누구인가? 고려가 망하자 끝까지 출사하지 않고 은거한 이들 중 두문동 72현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 이름이 다 전하지는 않지만, 그 중심에 박문수가 있다. 조선 건국 후 이들이 두문동에 들어 빗장을 걸고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 골자다. 전 왕조에 대한 충절이랄까.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기슭의 옛 이름이기도 하고 개성 부근 보봉산 북쪽 골짜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72현이니 48인이니 따위의 호명이 분분한 것은 이 고사의 전거가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두문(杜門)은 팔문(八門) 중의 하나다. 문을 닫아걸다라는 뜻으로 차용한 것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죽산 박씨, 박문수의 후예가 남원으로 내려와 정착한 것은 손자 박자량 때이다. 조용헌의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푸른역사)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숙부 박포(朴苞)가 이방원의 제2차 왕자의 난에 대항하다 패배하여 참수당하였다. 이 때문에 박자량도 좌천되어 전라관찰사로 내려왔다가 처가인 남원 수지면 초리에 눌러앉게 되었다. 몽심재라는 당호는 연당(蓮堂) 박동식(朴東式, 1753∼1830)이 호곡(虎音室)마을에 고택을 마련하여 붙인 이름이다.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절의를 다지면서 시를 보낸 후 16대나 지난 시점이다. 시의 끝 글자를 따 붙인 것이 '몽심재(夢心齋)'다. 박문수의 의도대로라면 몽(夢)은 도연명의 꿈이고 심(心)은 백이숙제의 꿈이다. 귀거래사로 유명한 도연명은 지금으로 말하면 귀촌 귀향의 대명사요, 고사리로 연명하다 죽었다는 백이숙제는 충절과 절의의 대명사다. 귀촌하여 절의를 지킨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을까? 고려의 흥망성쇠와 할아버지의 일편단심을 상고하였던 것일까? 장차 이를 망국의 기운을 감지하였던 것일까? 어쨌거나 호음실 죽산박씨의 의도와는 별개로 승승장구 벼슬길에 오르는 이, 재화를 얻는 이, 사회적 명성을 얻는 이들이 줄을 이어 나온다. 두문불출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문과, 소과를 포함하여 벼슬길에 오른 이가 82명이나 되고 만석군 거부까지 출현하였다. 세사에 초연하였으므로 얻은 명성이었는지 명성을 얻었기에 세사에 초연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몽심재를 중심으로 실천되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만큼은 두고두고 환기할 필요가 있다. 방이 8개나 되는 사랑채는 한양과 지방을 오가는 선비들의 살롱이었다. 전라도 일대의 선비들 사이에서 과객 대접이 후하기로 가장 이름난 곳이었다니 말이다. 조용헌의 분석에 의하면 몽심재에서 1년 동안 네트워크용으로 사용된 쌀이 3천 가마다. 600가구 3천 600명이 1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란다. 한양으로 오르는 이, 고향으로 내려오는 이들이 이곳에서 만나 교환한 정보의 양을 셈하기 어렵다. 헛간에 테두리가 올라있는 큰 멍석을 펴두고 쌀을 나누었다는 후문도 몽심재를 다시 보게 해준다. 하인들을 배려하여 문간채에 정자를 마련해주거나 부엌간의 지붕을 길게 늘어뜨려 휴게의 공간을 배려한 것 등, 한옥 자체의 기능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이야기들이 있다. 후손 중에는 도쿄에서 일어난 학생독립선언에 참여하기도 하고, 1923년에는 사재를 털어 건너편 안산 자락에 수지보통학교(현 수지초등학교)를 건립하고 수지중학교를 건립하여 국가에 헌납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불교와의 관련이지 않을까 싶다. 원불교의 대각여래위(大覺如來位) 중 한 분인 상산 박장식 종사(1911~2011)를 비롯해 수십 명의 성직자를 배출하였다. 그 중의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몽심재는 1984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원불교 교단에 희사했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 받들어 모시는 마음(供心), 대중과 함께 하는 마음(公心)이 혹여 몽심(夢心)의 꿈에서 연유된 것은 아닐까? 풀벌레 우는 소리에 눈을 지긋이 뜨니 구름인 듯 안개인 듯 흰 두루마기자락 휘날리며 누군가 걸어가신다. 500년 세월 가로질러 몽심의 의미를 일깨우러 오신 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무엇을 명가(名家)라 하며 명문(名門)이라 이르는가. 죽산박씨 종가의 격조는 물론이려니와 명가의 조건을 새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몽심재 바위에 새긴 낙관(落款), 미나리꽝과 남원추어탕 마당의 바위에 새긴 각자(刻字)가 특별하다. 후세에게 남긴 격언이자 유언이라고나 할까. 主壹岩(주일암)은 사심과 잡념 없이 흔들리지 않는 오롯한 마음 자세를 말한다. 存心臺(존심대)는 자신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아마 이런 정신이 원불교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千蒼崖(천창애)는 천길 절벽이라는 뜻으로 나라의 기운과 백성의 기운을 생각하며 새겼다 한다. 후손 박주현(1844~1910)이 상해에 독립자금을 보낸 것도 이런 정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靡他基適(미타기적)은 스스로 있는 곳에서 충실하라는 뜻이다. 경사를 따라 설계된 물의 흐름도 특별하다. 장독대에서 부엌간으로 앞마당을 거쳐 요요정(하인들의 정자) 아래 천운담(天雲潭)으로 흐른다. 담장 밑을 지난 물은 다시 마을 입구의 미나리꽝으로 흐른다. 몽심재 전성기 여기서 미꾸라지를 길러 빈객들을 대접했다고 하니, 어쩌면 이 미나리꽝이 남원 추어탕의 원조 아닐까? 남원 하면 떠오르는 추어탕의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라도 몽심재를 주목해보기 바란다. 지금은 고택의 앞쪽으로 흐르던 개울도, 천운담의 물을 받아 운영하던 미나리꽝도 모두 매립되었다. 왕평이 개성 만월대에 들러 황성옛터를 상고하였듯이 나는 지리산 오래된 풍경에 스며들어 몽심재의 꿈과 바위에 새긴 낙관을 상고한다. 남원의 청년들이 들고일어나 몽심의 꿈을 다시 꾸며 실천하는 때, 그것이 어즈버 태평연월 아니겠는가.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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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전국청소년공연예술제 대회(08/01)■목적 예술도시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국규모의 대회로서 양적, 질적, 향상을 통해 국내 최대 전국청소년예술제로 성장시키고 미래 우수한 청소년 예술가 발굴 및 육성의 장 마련 청소년들이 펼치는 무대예술의 작품제작 발표를 통해 문화예술의 메카로써 광주 위상강화 및 창조예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자리 마련 ■ 일 시 2024. 07. 13.(토) 오전 10시 예선 / 2024. 08. 01.(목) 오후3시 본선 및 시상식 ※ 예선(비대면 동영상 심사) ※ 본선(대면 심사) ■장소: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 ■주최/주관: 한국예총광주광역시연합회 ■후원: 광주광역시 / 광주시교육청/ 광주광역시의회 ■ 경연종목: 국악, 무용, 연극, 연예, 음악 ■ 참가대상: 전국 초. 중. 고. 재학생 및 동일연령 청소년 개인 및 단체 ■ 경연방법 ■국악 ▲판소리 - 판소리 5바탕(민요포함) 中 자유선택 ▲무 용 - 한국무용 中 자유선택 ▲기 악 - 관악, 현악 中 자유선택 ▲연 희(풍물, 난타) - 풍물, 난타 中 자유선택 ■무용 ▲현대무용 ▲발레 – 클래식, 창작 등 ▲케이팝 - 케이팝 댄스 커버 및 창작 등 ▲얼반 코레오 – 얼반, 코레오, 재즈댄스, 스테이지 퍼포먼스, 댄스스포츠 등 ▲스트릿 댄스 – 팝핀, 락킹, 왁킹, 하우스, 힙합, 비보이, 걸스힙합 등 ■연극 ▲뮤지컬 연기 – 노래, 연기, 춤을 포함한 기성곡의 뮤지컬 넘버 공연등 ▲연 기 – 희곡, 시나리오, 방송 드라마 등 ■연예 ▲보컬, 밴드 – 트로트, 발라드, 팝송, 재즈, 힙합 등 ■음악 ▲기악 – 솔로, 합주 등 ▲성악 – 가곡, 아리아, 중창 등 ※ 단체인원은 12인 이내 - 경연시간: 국악/무용/연극/연예/음악 - 7분 이내 - 모든 종목은 단심제이나 각 부문 1등만 본선 대면심사 진행 ※ 경연시간은 전체 행사일정 진행상 당일 심사위윈 회의를 통해 조정될 수 있음. ■ 참가신청 - 접수기간 : 2024. 05. 17.(금) ~ 06. 30.(일) 18:00-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 (본 대회 소정양식-정확한 주소·전화번호 기재)- 접수방법 : * 메일 제목 – 부문/종목/참가자 기재. 작성예시: 초등부/국악/홍길동 * 메일에 참가신청서, mp4파일 영상을 꼭 같이 첨부. * 메일 메모란에 전화번호와 성명을 남길 것. * 참가신청서 미첨부시 접수 불가 * 1인 1메일로 신청 바람. * 구글 메일로 발송 시 파일 열람 불가. 구글 외 다른 메일로 발송 바람. - 이 메 일 : art-youth@naver.com - 문 의 : 062) 528-9207 홈페이지 : http://www.kjart.or.kr ■ 참가신청 유의사항 - 동영상은 기존 공연물 동영상은 불가하며, 영상촬영 시 바로 경연 시작 바람. - 학원(단체)에서 다수 참가 시 메일로 참가신청을 개인별로 제출할 것.(1인 1개 메일 신청) - 단체부일 경우 악보 사용 가능. -개인 참가자일 경우 모든 부문 암보, 암기. - 제출한 영상은 반환되지 않음. ■ 영상 촬영 방법 -동영상은 7분이내이며, 영상 이메일 접수 시 반드시 mp4파일 접수, 이메일로 파일 첨부 업로드(대용량)하여 제출. (mov 파일, avi 파일은 mp4 파일로 꼭 변환하여 제출, mp4 외 파일은 접수 불가) ※mp4 외 파일은 화면이 끊기는 현상과 음악과 동작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 - 핸드폰 영상촬영 가능, 해상도 확인 후 제출 바람. - 카메라는 정면에 고정하여 화면이 흔들리지 않고 여백이 많지 않도록 촬영하며, 연예,성악,판소리등 참가자는 정면을 응시하며 촬영(립싱크 의혹이 있을시, 심사에 영향을 줄수있음) -국악,음악,연예의 경우 반주자는 보이지 않게 촬영. -단체 참가자는 전원이 나오도록 촬영. - 영상 제출은 접수기간내 촬영한 영상으로 한함. - 촬영 시 이름, 팀명, 학원명이 나오지 않게 촬영할 것. - 참가자는 무대의상(한복 및 경연의상) 착용하고 촬영. ▲행사장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문대로 60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 ■ 대회일정 경연대회 2024년 07월 13일 (예선) 광주예총 방울소리 공연장 진행시간 진행순서 10:00 개회식 10:20 심사회의 11:00 초등부 (동영상 경연) 13:00 중등부 (동영상 경연) 14:00 고등부 (동영상 경연) 15:00 폐회 경연대회 2024년 08월 01일 (본선 및 시상식)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 진행시간 진행순서 9:30 본선 15팀 도착 9:30~12:00 참가자 15팀 및 리허설 12:00~13:30 점심 13:30~15:00 축하공연 출연진, 시상식 리허설 15:00~16:30 본선 생중계 16:30~17:00 축하공연 17:00~17:20 인사말 및 축사 17:20~18:00 시상식 18:00 폐회 *행사 진행상 시간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기타 유의사항 - 예선 단체팀 대표는 개인중복참가 불가 혼합팀일 경우 인원수가 많은 쪽으로 접수 (예 : 초3명 + 중4명일 경우 중등부에 해당) - 예선, 심사결과는 집계 후 07월 15일 17:00 발표 (본선 진출자 홈페이지 공지) -본선 경연은 각부문 예선 1위(최우수상)만 진출합니다. 본선 경연작품은 예선과 동일해야 합니다. - 본선 경연 순서는 추첨을 배제하고 부문별 순으로 진행. - 본선 경연시 모든 공연의 작품에 필요한 소도구를 사용할 수 있음. ※ 단, 참가팀 스스로 운반 가능해야 하며, 무대에 손상을 주지 않고, 다음 참가자의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는 소품이어야 함. (금지소품: 가루, 액체, 발화물질 등) -본선 경연시 피아노와 드럼은 주최측이 제공합니다. 건반은 본인 지참 - 본선 경연시 개인 악기를 지참, 반주자 대동 - 본선 경연시 무용의 경우 반주곡이 있을 시 개인 USB를 지참. - 본선 경연시 공연에 필요한 음향시스템에 대해 반드시 기재하고, 이 부분은 주최 측과 협의. - 본선 및 시상식 상장은 대회 종료 (08월 01일) 후 신청서에 기재한 주소지로 우편 발송.(정확한 주소 기재) - 단체는 참가신청서에 단체 인원 모두를 필히 작성 바람. - 심사회피제: 참가자는 직접 스승이나 8촌 이내의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 심사회피 신청 약관에 동의하여야 합니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고 수상 후 발견될 경우 본 대회 규정에 의거 수상 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는 상장을 반환해야 한다. ■ 시상내역 (총상금 4,050만원) 구 분/ 부 문 내 용 시 상 훈 격 상장 상금 및 부상 초등부 국악 무용 연극 연예 음악 대상 광주시장상 1 200만원, 트로피 최우수상 광주광역시 교육감상 (각 부문) 4 100만원 우수상 광주광역시 의장상 (각 부문) 5 100만원 장려상 광주예총 회장상 (각 부문) 5 50만원 중등부 국악 무용 연극 연예 음악 대상 광주시장상 1 200만원, 트로피 최우수상 광주광역시 교육감상 (각 부문) 4 100만원 우수상 광주광역시 의장상 (각 부문) 5 100만원 장려상 광주예총 회장상 (각 부문) 5 50만원 고등부 국악 무용 연극 연예 음악 대상 광주시장상 1 200만원, 트로피 최우수상 광주광역시 교육감상 (각 부문) 4 100만원 우수상 광주광역시 의장상 (각 부문) 5 100만원 장려상 광주예총 회장상 (각 부문) 5 50만원 ※ 시상내역은 주최측과 해당기관의 사정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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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축제장서 일회용품 사용 없앤다전남도가 올해를 일회용품 없는 축제 원년으로 삼고 도내 22개 시군의 대표 축제 1개씩을 선정해 일회용품 없는 축제로 치르기로 했다. 전남도는 29일 전남 여수에서 2024년 순환경제사회 전환을 위한 정책 방향과 정부 합동 평가(자원순환 분야) 대응을 위한 워크숍를 개최하고 이같이 결정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자원순환 분야 정부합동평가 지표인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에 대한 열띤 토론을 거쳐, 올해 22개 시군의 대표 축제 1개씩을 선정하고 일회용품 없는 축제 만들기 원년의 해로 삼기로 뜻을 모았다. 그동안 축제에 참여하는 음식점 및 푸드트럭은 별도 제재 없이 일회용품 사용이 가능했지만, 올해부터는 시군에서 모집공고를 할 때부터 음식 판매 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고, 다회용기만 사용하도록 제한할 방침이다. 전남도는 오는 3월 8~17일 광양 매화축제와 3월 9~17일 구례 산수유꽃 축제를 시작으로 22개 시군, 22개 축제에 도비 8억원을 투입해 일회용품 없는 축제 만들기를 지원할 계획이다. 최재화 전남도 환경정책과장은 "다회용품 사용으로 새로운 자원순환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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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국회 통과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체육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이번 법률 개정안 주요 내용은 △정보통신망에 지정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입장권·관람권 등의 부정 판매 금지 △지방체육회와 지방장애인체육회의 공유재산에 대한 무상 대부, 사용‧수익 및 관리‧위탁 근거 마련 △체육계 인권침해 및 스포츠 비리에 대한 축소‧은폐 금지조항 마련 등이다.먼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스포츠 경기 입장권 등의 부정 판매를 금지하고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근거를 마련했다.문체부는 "이번 국민체육진흥법 일부 개정으로 공연과 운동경기 등에서의 암표 판매를 예방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공정한 유통 질서를 확립하고 이용자를 더욱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또한 이번 개정안에서는 지방체육회와 지방장애인체육회가 지역 체육진흥을 위한 사업을 더욱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게 했다.지방자치단체가 지방체육회와 지방장애인체육회의 사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지방체육회와 지방장애인체육회에 공유재산을 무상으로 대부, 사용·수익하게 하거나 수의계약으로 그 관리를 위탁할 수 있게 됐다. 이에 필요한 세부 사항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정한다.체육계 인권침해와 스포츠 비리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강화된다. 체육계 인권침해 및 스포츠 비리 조사에서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축소 은폐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 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신고 방해와 취소 강요 및 신고 의무 위반할 경우에도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문체부 유인촌 장관은 "이번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통해 투명하고 건전한 거래 질서 확립은 물론 스포츠 비리 근절을 위한 스포츠윤리센터의 조사권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공정한 스포츠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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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삶 담긴 음식 문화는…조선의 '요리 비법'을 찾아서"임금의 복통과 설사가 심하여 약방에서 입진(入診·궁중에 들어가 왕을 진찰함)하고 황금탕을 지어 올렸다." (경종실록 1724년 8월 22일 기사) 1724년 조선의 제20대 임금인 경종(재위 1720∼1724)은 여러 날 동안 아팠다. 병환이 낫지 않아 수라를 드는 것도 힘들어했고, 여러 의원이 번갈아가며 진찰하기도 했다. 복통으로 시달리던 경종이 끝내 숨을 거두게 된 원인으로 지목된 건 생감과 게장이었다. 조선 후기부터 전해지는 한글 요리서 '음식방문이라'는 과실을 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 "감과 배와 게를 함께 먹지 말라"는 내용이 실려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에 널리 쓰인 '요리책'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최근 펴낸 '조선 요리 비법: 장서각 소장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역주'는 한글 요리서 고전 3종의 가치에 주목한 책이다. 음식을 문화·인문학·역사학의 관점에서 연구해 온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중심으로 각 분야 학자 10명이 참여해 장서각 소장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했다. '주식방문'과 '음식방문이라', '언문후생록'은 모두 붓으로 필사한 자료다. 주 교수는 책 앞부분에 쓴 해제에서 이들 한글 요리서 3종의 특징과 구성, 다른 기관이 소장한 자료와 차이점 등을 분석한다. 요리법 항목이 몇 가지인지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장서각이 소장한 '주식방문'에 음식 이름이나 요리법 재료 등이 적힌 항목은 총 114가지이며, 이 중에는 병과(餠菓·떡과 과자)류가 35가지로 가장 많다.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 중인 '음식방문이라' 내용을 살펴보면 요리법과 음식을 먹을 때 조심해야 할 일 등 110가지, 의료와 가옥 관련 내용 12가지가 담겨 있다. '언문후생록'은 조선 후기 음식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요리법은 상세하지 않지만, 음식 이름과 재료 명칭을 한자와 한글로 함께 써놓아 조선 후기 음식 이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주 교수의 설명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은 "19세기 이후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요리서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음식문화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음식 문화에 담긴 선조들의 재치와 민간 신앙도 눈여겨볼 만하다. 밤을 구울 때 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그중 하나를 남이 모르게 손에 쥐어 감추라'라거나 '밤마다 눈썹 위에 세 번씩 문질러 구워라'는 부분은 웃음을 자아낸다. 책은 원문 이미지와 판독 내용을 함께 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한글로 필사한 각 단어의 뜻, 비슷한 어휘 등을 주석으로 달았고, '현대어역' 부분에서는 요리서의 각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주영하 교수는 "조선시대 요리책을 연구할 때 필요한 것은 '책의 문화사'라는 시선"이라며 "역주서가 국어학, 음식학, 생활사 연구에 이바지하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640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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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中'불꽃놀이' 훔쳐간다" 황당 주장.... "적반하장"중국의 한 언론사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5명 중 1명이 한국이 중국 전통문화인 '불꽃놀이'를 빼앗으려 한다고 답변, 논란이 커지고 있다.중국 매체 '구파신문'은 중국 정부가 1990년대부터 금지해온 춘제 불꽃놀이를 다시 허용키로 한 것과 관련, 중국 누리꾼들의 인식을 조사해 최근 보도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43%가 '전통 문화 보전을 위서 다시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중 '한국이 불꽃놀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해 중국의 문화를 빼앗으려 한다'는 의견이 27%를 차지했다.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정말 어이가 없다"며 "저는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관련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 세계에 알려왔던 터라 누구보다 세계유산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은 불꽃놀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적이 절대로 없다"고 밝혔다.서 교수는 "지난해 설 연휴 때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중국설'을 '음력설'로 훔쳐간다고 난리더니, 올해에는 불꽃놀이를 훔쳐간다고 또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자신들이 먼저 한국의 김치, 한복, 부채춤, 심지어 독립운동가 국적 및 민족까지 훔치려고 하면서, 우리가 자신들의 문화를 훔치려고 한다니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중국인들은 타국의 문화를 먼저 존중할 줄 알아야 자신들의 문화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만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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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보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호머 헐버트를 아십니까"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약 100년 전 한국의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외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베델과 호머 헐버트의 업적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반크가 8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5분 분량의 영상은 '우리 문화유산을 지킨 외국인! 어니스트 베델과 호머 헐버트'라는 제목으로 한국어와 영어 자막으로 제작됐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한문화재단과 함께 약 100년 전 한국의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두 명의 외국인의 업적을 국내외에 알리는 홍보 영상을 제작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전개한다.5분 분량의 ‘우리 문화유산을 지킨 외국인! 어니스트 베델과 호머 헐버트’라는 제목의 영상은 한국어와 영어 자막을 통해 두 명의 외국인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한다. 영상은 1970년 11월 14일 프랑스 파리 제1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국제 협약’ 중 제11조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된다’라는 내용을 소개하며 시작한다.이후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동양관에 전시된 약탈 문화유산의 상징 ‘오구라 도굴품’을 알린다. ‘오구라 컬렉션’으로 알려진 오구라 도굴품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사업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1964)가 수집해 간 한국의 문화유산 1100여 점을 일컫는 말로, 이 중 39점은 일본의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오구라 도굴품과 같이 전 세계에 유출된 대한민국 문화유산은 2023년 기준 27개국 22만 9655점이며, 이 중 한국으로 되돌아온 문화유산은 12개국 1만 134점이다.이는 전체 해외 유출 문화유산 대비 4.8%만 환수된 것이다. 한국 역사의 보물이자 한국인의 영혼인 21만 8621점이 아직 세계 곳곳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내일은 없고, 선조의 꿈이 그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라는 고 박병선 박사의 말처럼 이제 세계 곳곳에 있는 우리 영혼을 되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한국의 약탈 문화유산 반환 문제와 관련해 이미 100년 전 한국의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외국인이 있다.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전시된 대한민국 국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기까지 100년 전 두 명의 외국인의 헌신이 있었던 것이다. 호머 헐버트의 활동으로 이 사건이 만국평화회의보, 뉴욕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세계 언론에 보도되었고, 보도 후 석탑 약탈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국제적 비난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일본 정부는 결국 문화유산의 반환을 결정해야 했다. 반크는 "이번 캠페인 영상을 전 세계에 알려 세계인에게 이 문제를 알리는 것 또한 100년 전 어니스트 베델과 호머 헐버트처럼 우리 문화유산을 되찾는 시작"이라며 "이 캠페인에 한국인이 적극적으로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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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작년 3분기 영상 1억3천만여건 삭제…분기별 최대중국 바이트댄스를 모회사로 둔 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이 지난해 3분기(7∼9월)에만 1억3천653만여건의 영상을 삭제했다. 틱톡 동북아 신뢰안전팀 파트너십 양수영 매니저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틱톡코리아 사무실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집행 보고서'를 인용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2020년 3분기 삭제 영상(4천308만여건)과 견줘 3년 새 3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이자, 보고서가 발행된 이래 분기별 역대 최대치다.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사용자가 급증하고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츠도 늘면서 삭제 영상도 함께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작년 3분기 기준 틱톡에서 삭제된 영상은 '민감한 성인 테마'(38.8%)가 가장 많았으며 이어 '규제 대상 물품 및 상업 활동'(25.8%), '안전 및 시민 의식'(16.1%), '정신 및 행동 건강'(10.4%), '개인 정보 보호 및 보안'(7.7%), '진실성 및 진정성'(1.3%)이 뒤를 이었다. 이날 간담회는 틱톡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접근법과 디지털 문해력(리터러시) 고양을 위한 노력, 콘텐츠 심사 방식 등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근 추 쇼우즈 틱톡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상원 법제사법위원회의 '빅테크와 온라인 아동 성 착취 위기' 청문회에 참석해 신뢰와 안전 확보에 20억 달러(약 2조2천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답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양 매니저는 틱톡에서 현재 세계적으로 4만 명이 넘는 전문 심사 인력이 활동하고 있으며 작년 3분기 기준으로 삭제 영상의 96.1%를 선제적으로 삭제했다고 소개했다. 24시간 내 삭제와 조회 전 삭제 비율은 각각 90.6%, 76.8%에 달했다. 틱톡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각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 따른 국가 안보 위협,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사용에 따른 안전 이슈 등으로 전방위 규제 압박을 받고 있다. 인도의 경우 틱톡을 전면 금지했으며, 틱톡에 대한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가 지속해 제기되자 틱톡은 지난해 3월 18세 미만 사용자의 이용 시간을 60분으로 제한했다. 홍종희 틱톡코리아 커뮤니케이션 총괄은 이날 간담회에서 "틱톡의 정책은 국가별로 관심 영역이 각기 다르다"며 "한국의 경우 성 착취물 유통 방지, 청소년 자살 예방과 디지털 리터러시 고양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류동근 틱톡코리아 공공정책 총괄은 "틱톡은 정부로부터 N번방 사건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공로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면서 "사용자 보호 측면에서 가능하면 최대한 정부에 협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N번방 사건은 각종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미성년자가 포함된 피해자들을 유인·협박한 뒤 성 착취물을 찍어 보내게 하고 이를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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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위 시정권고 4건중 1건은 차별금지 위반언론중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작년 언론사에 내린 시정 권고 결정 중 차별금지 원칙을 위반한 보도가 전체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고 29일 밝혔다. 지난해 위원회는 개인적·사회적 법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보도 1천158건에 대해 언론사에 시정을 권고했는데 이 가운데 차별 금지에 관한 심의 기준을 어긴 사례가 286건(24.7%)으로 가장 많았다. 차별 금지 위반을 이유로 한 시정 권고는 2022년에는 50건(4.0%)이었는데 지난해에 급증했다. 차별 금지 원칙을 어겨 시정 권고를 받은 보도를 보면 기사 제목에 '눈먼 돈', '장애를 앓다', '결정 장애', '절름발이 제도' 등의 표현을 넣어 장애를 부정적 비유 대상으로 삼은 사례가 많았다. 위원회의 시정 권고 심의 기준은 언론사가 보도할 때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종교, 나이, 육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 등을 이유로 편견을 조장하거나 경멸하는 표현을 삼가야 하며 사안의 설명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이와 관련한 세부 사항을 과도하게 보도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 등에 관한 기준을 위반해 시정 권고를 받은 사례가 270건(23.3%)으로 차별 금지 위반의 뒤를 이었다. 이밖에 자살 보도 기준 위반 208건(18.0%), 기사형 광고 126건(10.9%), 과도한 충격이나 혐오감을 주는 보도 78건(6.7%), 아동학대 사건 보도 기준 위반 54건(4.7%), 범죄 사건 보도 기준 위반 45건(3.9%) 등으로 집계됐다. 시정 권고 현황을 매체 유형별로 구분하면 인터넷 신문이 1천7건(87.0%)으로 가장 많았다. 인쇄매체인 일간지는 83건(7.2%)으로 인터넷 신문보다 권고 수가 적었으나 이들의 관계사인 인터넷 신문, 닷컴, 스포츠 신문 등의 시정 권고 건수를 포함하면 335건(28.9%)에 달했다. 지난해 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받은 후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한 비율(수용률)은 65.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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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재검토 촉구 성명 발표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가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의 재검토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은 성명 전문이다. 2024년 신년 벽두에 ‘문화산업공정유통법’ 법률 제정안에 대한 논란이 웹소설 창작자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일명 ‘이우영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는 만큼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법률안의 취지 자체는 작가들로서도 환영하는 바이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과도하거나 악의적인 극히 일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산업 자체를 규제해서 창작자들의 터전을 제한하고, 발전을 막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이대로 시행될까 봐 불안하기만 하다. 현재의 법률안에 따른 규제가 시행되면 웹소설산업의 위축과 창작자의 이익 감소로 이어져 결국 웹소설산업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웹툰과 웹소설 등 디지털콘텐츠는 유통 방법부터 마케팅, 작가들의 활동 방식, 시장 형태 등등 많은 부분이 과거의 종이 출판 중심 콘텐츠산업과 다르다. 영상이나 게임, 웹툰 등 타 문화콘텐츠산업과는 다른 부분이 더 많다. 그런데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의 금지사항 등을 보면 디지털콘텐츠와 웹소설콘텐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항목들이 여럿 눈에 띈다. 특히 웹소설 매출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프로모션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는 5항, 작품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을 제한할 수 있는 1항·2항·3항 등은 매출 감소는 물론 신인작가의 발굴과 계약 등 등용문을 더욱 좁히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중견 작가들조차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5항 ‘판매촉진에 소용되는 비용, 합의하지 않은 가격 할인에 따른 비용을 문화상품제작자에게 전가시키는 행위 금지’의 내용만 보면 작가를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결국 ‘무료보기’나 ‘할인’ 등의 비용을 플랫폼과 업체에게 부담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마케팅에 부담이 가면 플랫폼과 업체는 마케팅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이름이 알려져 있고 매출이 보장된 작가가 아니면 프로모션을 받기가 어려워져 신인작가나 무명작가는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마케팅 감소는 독자의 접근성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독자 유입 감소와 작가 개개인의 매출 감소로 이어져 신인작가들이 다른 길을 택하게 만들 수 있다. 1항·2항·3항 ‘제작 방향의 변경 금지’, ‘문화상품 수령 거부나 판매를 거부하는 행위 금지’, ‘수정 보완하면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상해야 한다’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위 내용을 웹소설에 대비해서 보면 기본적인 기획, 편집, 수정조차 어려워질 테니 출판이나 유통을 할 때 확실하게 완성도가 높은 작가나 작품이 아니면 계약조차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질이 떨어지는 콘텐츠는 독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품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도 부족한 판에 향상시킬 방법 자체를 법으로 규제해버린다면 작품의 질은 좋아질 수 없다.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면 업체는 작품 제작을 줄일 것이고, 작품의 질이 떨어지면 독자는 떠나간다. 독자가 떠나면 플랫폼의 매출이 줄고, 결국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창작자가 볼 수밖에 없다. 웹소설산업의 경우 융합콘텐츠의 원천스토리산업으로써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게임이나 웹툰, 영상처럼 글로벌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보니 대안을 마련하기도 전에 고사할 수도 있다. 어느 콘텐츠산업이든 신인작가와 독자가 활발히 유입되지 않으면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 법안이 이대로 시행되고 규제가 진행된다면 창작자를 위해 만든 법률안이 오히려 창작자들을 옥죄고, 창작자들의 터전을 빼앗아버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 법률안을 제정하는 모든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좋은 취지로 법률안 제정에 나선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창작자들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좋은 법률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의견, 더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각 콘텐츠의 특성에 맞는 조사를 한 다음 법률안 제정을 진행해 주셨으면 한다. 속도를 우선해서 자칫 우리 작가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십여 년 전 절망에 처했던 어려움 속에서도 웹과 앱 등을 이용한 디지털콘텐츠 발전으로 일어서고,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웹소설 작가들의 꿈을 꺾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작가들이 작가도 모르는 사이 만들어진 규제 법률안로 인해 큰 피해를 입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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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등 문화인들 "이선균 죽음, 인격 살인…수사 적법했나"(종합2보)(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은 12일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숨진 사건을 경찰과 언론에 의한 '인격 살인'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이날 오전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 '기생충' 등으로 이선균과 호흡한 봉 감독과 배우 김의성, 가수 윤종신, 이원태 감독이 돌아가며 성명을 낭독했다. 장항준 감독, 배우 최덕문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봉 감독은 "고인의 수사에 관한 정보가 최초 유출된 때부터 극단적 선택이 있기까지 2개월여 동안 경찰의 보안에 한치의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고인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에서 마약 음성 판정을 받은 뒤 나온 KBS 보도에는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됐는데,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제공됐는지 면밀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이 고인의 3차례에 걸친 출석 정보를 공개한 점, 고인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등이 과연 적법한 범위 내의 행위인지 명확히 밝혀 달라"며 "그래야 앞으로 제2, 제3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종신은 이선균의 사생활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한 KBS 보도를 거론하며 "혐의 사실과는 동떨어진 사적 대화를 보도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며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이어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 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 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레커'의 행태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연대회의는 정부와 국회에도 형사 사건 공개 금지와 인권 보호를 위해 관련 법령을 제·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연대회의는 이를 '이선균 방지법'으로 명명하고, 향후 구체적인 법안 내용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원태 감독은 "설령 수사당국의 절차가 적법했다고 해도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건에 침묵하면 안 된다"면서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성명서를 김진표 국회의장과 경찰청, KBS에 전달할 예정이다. 연대회의는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이선균 관련 수사·보도 과정에 관한 문제 제기 필요성이 거론되고 이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결성됐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한국매니지먼트연합 등 단체 29곳이 참여했다. 성명서는 이들 단체를 비롯해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송강호 등 영화계 종사자 2천여 명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김의성은 "고인은 지난해 10월 23일 입건된 때로부터 2개월여의 기간 동안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됐다"면서 "그에게 가해진 가혹한 인격 살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유명을 달리한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했다"고 연대회의 발족과 성명 발표의 배경을 설명했다. 연대회의는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선균 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뜻을 같이하는 모든 단체와 함께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영화·예술계 전반이 (비슷한 사안에서도) 함께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연대 회의체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연대회의 소속 영화·대중문화계 단체 대표 12명도 참석해 발언했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고인의 사안이 이에 해당하는지 다시 한번 숙고해달라"면서 "'디지털 감옥'에서 살 수밖에 없는 고인의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기사를 삭제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국내 언론과 외신 기자 약 300명이 참석했지만, 연대회의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고 회견을 마쳤다. 이선균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해 10월부터 경찰 수사를 받다가 12월 27일 성북구의 한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며 사망 전날에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의뢰했다. 이선균 사망 이후 일각에서는 그의 마약 혐의와 관련성이 적은 사생활 폭로 식 언론 보도와 경찰의 공개 소환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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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용 금지법’ 국회 통과…보신탕 안된다지난 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을 가결했다. 이로써 ‘88올림픽’을 앞두고 촉발한 개 식용 논쟁이 30여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법이 공포되는 즉시 식용 목적 개의 사육농장 및 도살·유통·판매 시설을 신규 또는 추가로 운영하는 것이 금지된다. 사육농장 등은 법 공포 후 3개월 이내에 운영현황 등을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하고, 6개월 이내에 종식 이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사육·도살·유통 등의 금지를 위반할 시 처벌은 3년 유예된다. 공포 3년 후부터는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된다. 이를 어기고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판매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업·폐업하는 사육농장·도축업자·식당 등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이어가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의사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물보건사 양성기관(대학) ‘입학’ 시점을 기준으로 동물보건사 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이밖에 이날 본회의에선 한국형 미 항공우주국(NASA) 설립을 위한 ‘우주항공청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도 처리됐다. 이로써 우주항공청 설립이 이르면 5월 가능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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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의례문서 홀기 수록' 한국음악학자료총서 발간국립국악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 중인 '홀기'류를 수록한 책 '한국음악학자료총서' 58집을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홀기는 집회, 제례 등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 및 절차를 미리 적어 낭독하게 하는 의례 문서다. 궁중 연회에서 공연되는 정재(呈才·춤과 노래)를 연습할 때 사용한 춤사위의 순서, 반주음악과 가사 등이 자세히 적혀있어 궁중 의궤와 함께 조선시대 의례와 예술사 연구에 중요하게 활용된다.그간 관련 자료는 각 소장기관 홈페이지에 일부만 공개돼 있어 전체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이번 총서는 고화질로 새롭게 촬영한 홀기 전체를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또 국립국악원은 국악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성기음반 367점을 정리한 목록집을 발간했다.유성기음반은 1900년대부터 1950년대 LP로 대체될 때까지 20세기 전반기에 널리 통용되었던 음악 매체로, 근대 음악의 실체와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다. 목록집에 포함된 유성기음반 가운데 제비표 유성기음반은 전기녹음 이전인 1925년과 1926년에 소량만 제작되었던 희귀음반이다. 또 빅터사의 조선아악은 1928년 조선의 궁중음악을 처음 기록한 음반으로 가치가 높다.국립국악원은 1979년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집 발간을 시작으로 국악 관련 고악보, 의궤, 악서, 무보 등을 영인 및 해제해 학술연구의 토대가 되는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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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진흥법' 스포츠윤리센터 조사 거부하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앞으로 체육계 인권침해와 비리 조사 기능이 강화된다.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스포츠윤리센터 조사 거부․방해․기피 행위 금지 및 제재, ▴문체부 장관의 징계 요구에 대한 체육단체의 처리결과 보고기한 설정, ▴체육지도자에 대한 스포츠윤리 교육 강화 등 체육계 인권침해와 스포츠비리 근절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스포츠윤리센터 조사에 대한 거부․방해․기피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 사건조사의 실효성을 확보한다. 또한 체육계 인권침해 및 스포츠비리 사건에 대한 문체부장관의 책임자 징계요구에 대해 체육단체가 90일 이내에 처리 결과를 보고토록 처리기한을 명시하여 신속한 사건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체육지도자의 윤리의식 향상과 체육계 인권침해 방지 및 비위 근절을 위해 체육지도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다. 체육지도자 자격취득을 위한 필수 연수 과정과 체육지도 업무에 종사하는 체육지도자 대상의 재교육 과정으로 현재 운영하고 있는 ‘성폭력 등 폭력 예방교육’을 체육의 공정성 확보와 인권 보호를 위한 내용의 교육을 포함하는 ‘스포츠윤리교육’으로 확대한다. 이외에도 사행산업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23년 6월에 도입된 ‘만 나이’를 체육진흥투표권에도 적용해 나이 기준의 통일성을 확보한다. 문체부 유인촌 장관은 "이번 '국민체육진흥법'개정으로 스포츠윤리센터 사건처리의 실효성과 체육계 현장의 윤리의식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앞으로도 스포츠인권 문화의 안착과 공정하고, 건강한 스포츠 생태계 조성에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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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담장 훼손 방지 종합대책 발표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난해 12월 16일과 17일 발생한 경복궁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주변 궁장(궁궐 담장)의 스프레이 낙서에 대한 보존처리를 12월 28일 완료해 점검(모니터링)을 거친 후 1월 4일 오전 완전 공개하고, 향후 국가유산에 대한 훼손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훼손된 담장의 보존처리에는 문화재청의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와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의 문화유산 보존처리 전문가들이 총 8일간(12.16.~20. / 12.26.~28.), 하루 평균 29.3인 규모로 투입되었다. 레이저 세척기와 스팀 세척기, 블라스팅 장비 등 전문장비는 총 5일간 투입되어 장비 임차료 총액은 946만 원으로 집계되었고, 이외에 방한장갑과 정화통, 방진복 등 소모품 비용으로 1천 207만 원이 들어 장비임차와 소모품은 4일 현재 총 2천 153만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 금액과 함께, 투입된 전문가 인건비 등을 포함한 전체 복구비용을 감정평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감정한 후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다. 또한, 이번 작업(1단계)은 동절기와 담장 위치별 석재의 상태를 고려하여 스프레이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응급복구 위주로 추진하였으며, 담장의 표면 상태에 대한 모니터링을 거친 후 보존처리 작업(2단계)을 최종 완료할 예정이다. 지금 시점의 공정률은 80% 정도로 예상한다. 세부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영추문 주변은 육축 구조로 전체적으로 석재의 상태가 평편하여 미세 블라스팅 방법을 적용하였고,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주변 담장은 양쪽의 상태가 달라 보존처리 방법도 달리 적용하였다. 우선 국립고궁박물관 좌측 담장은 전체적인 석재의 상태가 좋지 않아 레이저 클리닝으로 반복 작업하고 모터툴로 마무리하였다. 우측 담장은 상대적으로 석재의 상태는 양호하였으나 낙서 범위가 광범위하여 화학적 방법과 물리적 방법(레이저 클리닝, 에어툴, 모터툴 등)을 병행하고 색맞춤 등을 진행하여 1단계 보존처리를 완료하였다. 향후 담장의 표면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석재 표면의 변화상태와 색맞춤 변화 정도를 고려하여 2단계 보존처리 작업을 마저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제82조의3제3항)에 따라 원상 복구에 소요된 비용을 징수하고, 유사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같은 법 제92조제1항에 따른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력하여 강력히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담장 낙서와는 별도로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의 내부에 있는 낙서 현황을 파악한 결과, 건물의 기둥과 벽체 등에 연필이나 유성펜, 수정액 등이 사용된 낙서와 뾰족한 도구 등이 사용된 새김훼손 등을 다수 확인하였다. 훼손유형과 정도에 따라 경미한 수리 범위에 해당하는 경우 상시관리를 통해 조치해나갈 예정이며 수정액, 래커 등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보존처리를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궁궐 외곽 순찰을 강화하기 위해 순찰지역을 확대하고, 야간시간대에는 2~4회 자체 순찰을 하고 있으며, 특히 경복궁은 연내로 야간시간대 순찰을 8회로 확대할 것이다. 관할경찰서와 협조체계를 구축하여 외곽경계부에는 경찰도 순찰을 지속하고 있다. 아울러 경복궁 외곽담장에 기존 14대인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20대 더 추가하는 등 4대 궁과 종묘, 사직단의 외곽 담장에 총 110대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이외에, 국가유산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은 출입부와 주요 관람영역에 낙서금지 등에 대한 안내배너 42개를 설치했으며, 4개 국어로 작성한 안내판도 32개소에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관람해설과 궁궐 안내방송을 통해 낙서행위 금지 안내를 하고 있으며, 궁능 입장권과 안내책자(리플렛 등)에 낙서 등 훼손 금지 문구(4개 국어, 국·영·일·중문)를 삽입하여 지속적으로 홍보할 예정이다. 궁능관람규정에 문화유산 훼손행위 금지 등에 대한 항목을 마련하는 규정 개정도 추진한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까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낙서 등 훼손에 취약한 국가유산과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이 설치되지 않은 구간을 파악한 후, 4월까지 광역시·도에서 운영 중인 국가유산 돌봄사업을 정기점검해 심층 점검할 계획이다.이를 통해 인위적 훼손을 조기에 인지하고 자동알람 및 경고방송과 현장출동 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지능형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이 추가로 필요한 국가유산을 파악할 예정이다. 확인된 취약지역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광역시·도에서 국가유산 돌봄사업을 통해 매월 정기점검을 실시하고, 내년에는 돌봄사업의 점검 인력을 올해 대비 25%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올해부터 국가유산 안전경비원을 대상으로 훼손상황 발생 시 신속한 초동대응을 위한 방재 전문 교육을 실시하고, 내년에는 관리 사각지대 순찰 및 훼손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증원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문화재청 누리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낙서 등 국가유산에 대한 훼손을 금지하는 콘텐츠를 제작·게시하고, 인식 개선 콘텐츠와 안내책자 등을 제작·보급할 계획이다. 또한 청소년 대상 문화유산 교육교재에 문화유산 훼손의 문제와 보호의 중요성을 포함시킬 것이다. 이러한 대국민 홍보와 함께 국가유산에서 낙서 등의 훼손이 발생하면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 누리집(신고센터-문화재 훼손신고)과 국가유산 훼손신고 전화(1661-9112) 운영을 통한 국민신고제를 활성화할 것이다. 이외에도, 국가유산의 재질과 오염물 성분에 따라 맞춤형 보존처리 기술의 신속한 적용이 가능하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낙서 등 오염물 제거방법의 현장 적용을 위한 실용화된 기술과 매뉴얼 등을 작성해 지방자치단체와 보존처리 관계자 등에 보급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경복궁 담장 훼손사건을 계기로 국가유산의 보호 역량을 보다 확대·강화하고, 향후 이와 같은 훼손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을 엄정하게 적용하고 관용 없이 강력히 대응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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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저작권 강국 전략' 발표, K팝 안무 저작권 보호 강화인공지능(AI)이 만든 그림, 시·소설 등 산출물은 저작권을 등록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정부가 명확히 했다. 또한 K팝 안무는 저작권 보호를 강화한다. 안무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음악방송에서 작곡·작사가뿐 아니라 안무가의 이름도 표기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7일 서울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에서 '저작권 강국 실현, 4대 전략'을 발표했다. 4대 전략은 △저작권 사각지대 해소 △인공지능 선제 대응 △저작권산업 유통 투명성 제고 △콘텐츠 해외 불법유통 적극 대응 등이다. 문체부가 안무 저작권을 보호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그동안 K팝 시장이 성장하면서 K댄스의 세계적인 위상도 높아졌지만 작곡가, 작사가와 달리 안무가의 안무 저작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먼저 K댄스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보는 음악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안무저작권 저변을 확대한다 문체부는 뮤지컬, 연극 등 현장성이 핵심인 무대 공연을 몰래 촬영해 피해를 주는 이른바 ‘밀캠’(무단녹화) 영상물의 불법 거래에 대해선 내년 1월 말까지 집중 단속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창작물의 해외 불법유통에 대해선 인터폴 등과 국제 공조를 통해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저작권료를 정확하게 분배하기 위해 음악플랫폼 등에 이용자의 사용 정보 제출 의무화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생성형 AI와 관련한 저작권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만든 창작물에 대해선 저작권 등록이 금지된다. 저작권자는 본인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이용되는 걸 원하지 않을 경우 반대 의사를 약관규정이나 로봇배제표준 등의 방식으로 명시해야 한다. 음악방송에서 작곡·작사가와 함께 안무가 이름을 노출하는 등 성명표시권 보호와 저작권 등록·교육·법률상담 등을 다각적으로 지원한다. 저작물 자체로서의 인식이 부족하고, 계약단계에서 불공정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건축저작물의 보호도 강화한다.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없는 AI 산출물에 대한 저작권 등록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인간의 창의적 작업 부분에 한해 등록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생성형 인공지능(AI) 저작권 안내서'도 발표됐다. 문체부는 뮤지컬, 연극 등 현장성이 핵심인 무대 공연을 몰래 촬영해 피해를 주는 이른바 ‘밀캠’(무단녹화) 영상물의 불법 거래에 대해선 내년 1월 말까지 집중 단속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창작물의 해외 불법유통에 대해선 인터폴 등과 국제 공조를 통해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저작권료를 정확하게 분배하기 위해 음악플랫폼 등에 이용자의 사용 정보 제출 의무화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생성형 AI와 관련한 저작권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만든 창작물에 대해선 저작권 등록이 금지된다. 저작권자는 본인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이용되는 걸 원하지 않을 경우 반대 의사를 약관규정이나 로봇배제표준 등의 방식으로 명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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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아리랑’을 아십니까?‘일본아리랑’을 아십니까? ‘일본아리랑’ 40종, 1931년부터 1965년 까지 일본 속에서 제작되어 음반에 수록되어 음원이 확인 되는 아리랑 종류가 40여 종이 확인이 된다. 이를 ‘일본 속의 아리랑’ 또는 ‘일본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논하는 자리가 펼쳐진다. 그동안 남북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중국이 자국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상황에서 이웃나라 일본인들이 듣고 부른 아리랑이 40여종에 이른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예를 든다면 1932년 소화시대 최고의 작곡가 고가마사(古賀政男) 編曲 佐藤惣之助 作詞에 淡谷のり子와 長谷川一郎(蔡奎燁)이 부른 ‘アリランの唄’ 등이다. 이런 아리랑이 1965년까지 발매된 음반에 수록된 것이 53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여가수 스가와라 스즈코(菅原 都々子)가 자신이 부른 아리랑만해도 6종(‘아리랑’, ‘아리랑 달밤’, ‘아리랑 애가’, ‘그리움은 아리랑고개 넘어’, ‘아리랑 이야기’, ‘아리랑 애가 이야기’)이나 된다. 그리고 이를 SP·LP·EP 음반을 발매하며 여기에 60여번이나 아리랑을 수록하기도 했다. 이는 매우 주목할만 한 사항이다. 그런가 하면 장르에서도 엔카, 전통성악 신나이, 째즈 형식의 아리랑도 있고, 영화, 미술, 공연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에 의해 아리랑문화를 형성시켰다. 이는 일본의 음악적 개방성에 의한 아리랑 정서 수용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피압박 민족 ‘고난극복 메타포(metaphor)’로서 아리랑의 보편 가치를 수용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아리랑’ 40여종의 곡명을 살피면 가장 많은 것은 아무런 수식 없이 쓴 ‘아리랑’(アリラン)이다. 1931년 첫 아리랑부터 1965년까지 12가지가 되는데, 8가지는 곡조가 ‘본조아리랑’이다. 가사도 1, 2절은 거의 본조아리랑을 수용하고 있다. 후렴도 반드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アリランアリランアラリヨ アリラン峠を越えゆく)를 썼다. 또한 3, 4절은 모두 개사한 것이다. 여기에 ‘노래’라는 의미로 쓰이는 ‘アリランの唄’(小唄, 節 포함)가 13종인데, 이 역시 거의 곡조는 본조아리랑이다. 이 경우는 1절과 후렴 전행은 같으나 2~3, 4절을 개사한 것이다. 이 같이 두 경우는 번안작품이 분명하다. 이는 언급한 바 있듯이 ‘일본아리랑’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것은 1926년 개봉된 영화‘아리랑’의 주제가임을 재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悲歌’, ‘哀歌’, ‘夜曲’, ‘新曲’이 각 1종이다. 주제(主題)가 짐작이 된다. 지명을 쓴 것은 단 두 가지만 확인된다. 만주아리랑(満州アリラン-1937)과 도쿄아리랑(東京アリラン-1959)이다. 같은 곡명은 アリラン夜曲(1935)과 아리랑 항구(アリラン波止場-1960) 이 각 2종이다. 그리고 서양 음악 리듬을 제목에 쓴 경우가 두 가지인데, 아리랑룸바(アリランルンバ-1952)와 아리랑맘보(アリランマンボ-1954)이다. 1950년대 일본의 댄스 음악의 유행상을 짐작케 한다. 장르상 주목하는 작품도 있다. ‘가요이야기(歌謡物語)’ 가 두 작품인데, ‘아리랑가수’ 스가와라 쓰즈코의 두 작품이다. 그 내용 등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핀 바 있다. 한편 ‘고개’를 쓴 것은 한 종이 있는데, ‘고개 상’(峠)을 쓴 ‘아리랑고개 (アリラン峠-1951)이다. 한자권에서는 주로 고개를 ’嶺‘을 쓰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쓴 것이 확인되었다. 이외의 곡명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의 추억(アリランの思ひ出-1933) ‘가요이야기 아리랑애가 엘레지’(歌謡物語アリラン哀歌 エレジー1951) ‘가요 아리랑이야기’(歌謡物語 アリラン物語-1952) 울지마 아리랑처녀(泣くなアリラン娘-1952) 아리랑 달밤(アリラン月夜-1953) 동경아리랑 고개 저편(憧れはアリラン峠の彼方-1954) 아리랑 자장가(アリラン子守唄-1955) 아리랑 고개의 추억(アリラン峠の思い出-1960) 이상의 곡명에서 작품의 주제를 어느정도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즉, ‘이별의 정한’ 내지는 ‘과거 회상’이 된다. 30년동안 발표된 전체 곡명 중 ‘아리랑(アリラン)’과 ‘아리랑우타(‘アリランの唄)’를 쓰는 것이 절반에 이른다. 곡조와 후렴 전행 또는 후행을 거의 공통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아리랑’ 주제가 또는 ‘본조아리랑’의 번안(飜案) 작품들이다. 본조아리랑의 자장력(磁場力)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이를 대상으로 4인이 모여 이에 대한 의미와 성격 등을 논의 한다. 자료를 유튜부에 정리하여 검색을 가능케 한 ‘정창관의 아리랑’ 운영자 정창관 선생, 이를 분석 해제와 번역을 한 ‘라일락회’, 가장 오랜 재한 주재 일본인 구로다 가쓰히로(黑くろ田だ 勝弘かつひろ)기자,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이 함께한다. 주최는 ‘라일락회’, ㈜국악신문이 후원한다. 22일 오후 2시, 인사동 태화빌딩 회의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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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2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싸구려 어허허 굵은 엿이란다 정말 싸다 파는 엿/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석달 열흘 백일삼제/ 화초가리 더덕가리 동삼가리가 다 들어간 엿/ 열아홉살 먹은 크내기가 동삼물로 제조를 했다 지름이 찍찍 흐른다~" 2009년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졸업식 발표회 장면 중 하나, 객석의 뒷자리에서 갑자기 엿판을 든 엿장수가 등장하더니 관객들을 훑으며 무대로 올라온다. 엿가위로 리듬을 맞추며 해학적인 엿타령을 구수하게 뽑아낸다. 저자에 흘러 다니는 말은 '엿장시 맘대로'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격조 있고 운율 있는 노래이니 '엿장수 가락'이라고나 할까. 무대에 오르자 걸쭉한 입담이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이어진다. "에, 이 엿장시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멀리 진도에서 올라온 엿장시인디, 오늘 엿을 쪼깐 많이 폴아서 진도 갈 여비를 해야 쓰거쏘!"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자그마한 키에 귄 있는 몸짓, 엿타령을 한 주인공은 졸업생 조유아다. 엿타령 하며 객석을 돌았는데 엿판에 수북이 돈이 쌓였다. 자그마치 진도를 십수 번 다니고도 남을 금액이었다나. 그뿐 아니다. 당시까지는 이름이 조은심이었던 송가인이 씻김굿으로 졸업 공연을 준비했으니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이 어쨌을 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후 조유아는 전공 판소리보다 엿타령 가수로 더 많이 알려져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송가인은 트롯트 가수로 전향하여 이미 국민가수가 되었다. 박색구, 조오환, 조유아로 이어진 삼대 엿타령 국립창극단 정단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유아가 엿타령을 잘하는 데는 그만한 내력이 있다. 아버지 조오환이 엿타령의 명인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닻배노래(전남도지정 제40호) 보유자이기도 한 조오환은 엿타령 뿐만 아니라 만년필타령, 뱀장수타령, 비손소리 등 못하는 소리가 없다. 일찍이 고향 민속문화의 보전 전승에 눈을 떠, 진도북놀이며 사물놀이, 상여소리 등에 주도적으로 관여해왔다. 조오환의 엿타령은 어머니 박색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민요대전(한국민요대전)에 고 박색구의 엿타령과 민요가 여러 곡 실려있다. 명실상부한 삼대의 엿타령이다. 뿌리를 추적하면 아득한 조상으로 연원을 좇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 엿타령이 현장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 남편을 여읜 박색구는 좁쌀 등으로 엿을 만들어 오일장인 진도군 의신면 돈지장이나 읍장에 내다 팔았다. 친척이나 이웃들의 비웃는 소리를 감수하며 목포, 무안 등 서남해 일대를 유랑하며 엿을 팔기도 했다. 그 현장에서 엿을 팔면서 불렀던 노래가 지금의 조유아 엿타령이다. 조오환은 이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진도민속예술단'이라는 연희단체를 만들어 활동한다. 진도읍에서 실제 엿을 만들어 팔면서 엿타령 공연도 하고 전수도 한다. 무쇠솥에 장작을 지피는 등 엿 만드는 과정도 전통방식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다. 농업이나 어업의 맥락이 사라져 노래만 남은 문화재들에 비하면 컨텍스트까지 보존하고 전승하는 명실상부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장시(場市)와 엿타령 엿타령은 엿판을 지고 엿을 팔면서 부르던 노래다. 엿장수타령, 엿파는 소리 등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통칭하여 엿타령이라 한다. 어떤 시점 이후에 유흥을 위한 노래나 현장 맥락이 소거된 민요로 정착했다. 근대 이후 무대화되어 유희 민요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북한 민요집이나 전국 각지의 민요자료에도 엿타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 정보 중 하나는 김홍도의 씨름 그림이다. 엿판을 지고 엿을 파는 엿장수가 그림의 포인트다. 당대 풍속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엿판 지고 엿을 팔기에 통상 시장을 배경 삼는 상업풍속으로 해석한다. 상업민요니 상업노동요니 하는 이름이 그래서 나왔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5년(1520) 3월 21일자 기사를 참고한다. "신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철저하게 금지했는데도 지금은 전일보다 심하여 시장에 나오는 자가 몇만 명에 이르니 (중략) 장시(場市)는 근년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남녀간에 주육(酒肉, 술과 고기)을 마련하여 시장에서 팔아 그 이(利益)를 취하고 있으니..." 이 행간에 엿장수가 있다. 엿의 문화사를 추적해보면 명절떡과 조청엿에 닿고 장시의 엿장수에 닿는다. 16세기 이후 서울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장시(오일장)가 엿장수의 배경이라는 점 명백해 보인다. 엿파는 행위만 있는게 아니다. 예컨대 농사를 지어 좁쌀을 생산하고 무쇠솥과 장작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엿을 만들며 또 오일장에 내다 팔면서 엿타령을 연행하는 것은 명백한 종합장르다. 개별단위가 아닌 종합장르를 무형문화재 지정 등의 방식을 빌어 보존 전승할 필요가 있다. 장시의 맥락을 전제하면 장타령, 각설이타령까지 포괄한다. 생산, 유희, 소비까지 포섭한다. 더구나 김치, 식혜, 주류 등 우리 발효문화의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에서 엿타령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조유아(들)의 활동을 응원한다. 어뜬 엿장시/이윤선 우리집 모방에 총각 엿장시가 한 분 살았습니다. 쌀엿 좁쌀엿 호박엿 감자엿 통째로 엿 한 통을 솥에 곱고는 손뿌닥 철석철썩 때래감시로 가락엿을 맹글았습니다. 양짝에서 질게 엿을 느래 잡고 고운 가루 무채 찰싹찰싹 때래 니리믄 크내기 허벅지만하던 것이 쫑쫑한 가락들이 됩니다. 귀갱삼아 문을 빼꼼이 열믄 어서 들온나. 어서 문 다채라. 바람 따라올라 조막만한 나를 다그채며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가락엿 맹글 때 바람 들어오면 안 된담시로요. 어짜다 한골목에서 총각 엿장시 만나믄 가락엿을 냉큼 집어 고사리 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쥔집 귀한 아들래미라 그러했을 것입니다. 버짐한놈 코흘린놈 종기난놈 내 동무들 앨곤하니 쳐다보믄 어찌 나 혼자 먹을 수 있겄습니까. 대가리 큰놈부터 척척 나놔주고 엿치기를 합니다. 딱 부러띠래갖고 끊어진 자리 훅! 불고서는 모도 벌어터진 손꾸락 사이 삐죽삐죽 엿가락들을 대봅니다. 어뜬 날은 똘똘말이 몰아주어 한 입 못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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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영화역사, 김종원의 영화 인생을 만나다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 이하 ‘영상자료원’)은 10일(금)부터 시인이자 영화평론가, 영화사가인 김종원 선생이 수년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자료들로 구성된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을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누리집(KMDb)을 통해 공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위한 든든한 밑거름, 김종원 컬렉션 김종원(1937년~)은 1959년 월간 『사상계』를 통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같은 해 『자유공론』 11월호에 「한국 영화평론의 위기와 과제」를, 『씨나리오 문예』 4집(1959년 12월)에 「현실과 앙가즈망의 계곡: <10대의 반항>과 <금지된 장난>의 작품 세계」를 발표하며 영화평론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0년에는 평론가 이영일, 김정옥, 노만, 정우영, 허창 등과 함께 한국영화비평가협회(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전신)를 발족해 보다 적극적인 영화 비평 활동을 전개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 2 - ‘영평상’ 제정을 주도했고,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유수 영화 시상식의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한편 김종원은 평론 활동 외에도 태창흥업(1968년~1969년; 1979년~1980년 재직)과 한림영화사(1982년~1983년 재직) 등의 기획실장을 역임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버려진 청춘>(김소영, 1982) 등의 작품을 기획한 바 있다. 영상자료원이 공개하는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에는 그가 처음으로 영화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고정 지면을 확보해 영화 평론을 게재했던 『씨나리오 문예』를 비롯해 당대 영화 비평 담론을 주도했던 『영화예술』과 『현대영화』, 『영화TV』, 『영화TV예술』 등 다수의 영화 잡지가 포함되어 있다. 한편 그가 태창흥업과 한림영화사 기획실장으로 일하던 시기, 그곳에서 제작한 영화 스틸들과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로서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을 장기간 역임하며 받았던 임명패 등도 컬렉션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컬렉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한국영화사 연구에 매진하며 수집한 자료인, 1926년 10월 1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아리랑>(나운규, 1926) 광고이다. 당시 <아리랑> 광고는 조선 민족의 한을 그린 민요 "아리랑”의 일부 가사 때문에 광고 발행 직후 조선총독부 검열 당국에 의해 삭제 조치 되었는데, 이번 컬렉션에 소장된 <아리랑> 광고는 검열 조치 이전의 내용을 ‘온전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이 광고가 게재된 『조선일보』 1926년 10월 1일자 신문은 현재 - 3 - 까지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아리랑>의 ‘검열 이전’ 광고를 확인할 수 있는 현존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평론가로서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평생을 매진한 그의 삶이 녹아 있는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은 한국영화에 뜻이 있는 젊은 후학들을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영상자료원이 공개하는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은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누리집(www.kmdb.or.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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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한국 첫 장편 인형 애니 '흥부와 놀부' 블루레이 출시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 최초의 장편 스톱모션(Stop Motion) 인형(Puppet) 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1967)와 <콩쥐팥쥐>(1977)를 담은 '강태웅 애니메이션 컬렉션'을 블루레이로 출시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기획하고 블루키노가 제작한 34번째 블루레이 타이틀이다. 수록 영상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한 오리지널 네거티브 35mm를 활용해 4K 디지털로 심화복원한 버전이다. '흥부와 놀부'는 1967년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흥행을 계기로 영화사 '은영필림'이 강 감독에게 제작을 제안하면서 탄생한 작품이다. 제5회 청룡영화상 비(非)극영화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세아영화제에도 출품됐다. 강 감독은 일본에서 모치나가 다다히토 감독에게 인형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와 두 편의 극영화를 연출한 뒤 '흥부와 놀부'를 만들었다. 그는 일본 인형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법에 한국 전통 인형극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태웅은 1929년생으로 1949년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영화를 배우기 위해 밀항해 일본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에 입학한다. 졸업 후 '덴쓰영화사'의 후원을 얻어 모치나가 다다히토(持永只仁)와 이나무리 기이치(?村 基一)가 설립한 인형영화제작소에 입사해 모치나가 다다히토 감독 아래에서 인형 애니메이션을 배운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대략 4년 정도 인형 제작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모치나가 다다히토의 교육용 인형 애니메이션 <다섯 마리의 원숭이들>(1956) 제작에도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1958년 대한민국에 귀국한 후 1959년 자신이 주연과 연출을 맡은 장편 극영화 <백의 천사와 꼽추>로 영화계에 데뷔하고, 1966년 신성일, 엄앵란, 김승호 배우가 출연한 두 번째 극영화 <금지된 입술>을 연출한다. 사실 강태웅 감독은 귀국한 시점부터 한국에서 인형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보려 시도 했지만, 쉽사리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67년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크게 흥행하여 한국영화계에 애니메이션 제작 붐이 일어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은영필림'의 김동식 대표가 강태웅 감독을 찾아와 인형 애니메이션 제작을 제안한다. 그렇게 <흥부와 놀부>가 만들어졌다. <흥부와 놀부>는 대략 5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에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 여건이 열악했고 인형 애니메이션이란 개념조차 낯설 만큼 전문 인력이 없었기에 오롯이 강태웅 감독 개인의 집념과 노력으로 완성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77년 아동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유현목 감독의 제안으로 '유프로덕숀'에서 두 번째 인형 애니메이션인 <콩쥐팥쥐>를 제작한다. <콩쥐팥쥐> 이후 2023년 박재범 감독의 장편 인형 애니메이션 <엄마와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46년 동안 강태웅 감독은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장편 인형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남아 있었다. 강태웅 감독의 업적은 애니메이션 제작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1961년부터 서라벌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강사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문교부의 인가를 받은 첫 '애니메이션 강좌'를 개설하였고 애니메이션 개론서인 '애니메이션 영화입문'을 집필하였다. 1994년 대학교수에서 은퇴한 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의 강사로 활동하다 2003년 영화계를 떠났다. 최초의 인형 애니메이션 제작, 후학 양성을 위한 강태웅 감독의 큰 업적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1997년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한국 애니메이션의 재발견' 프로그램에서 <흥부와 놀부>, <콩쥐팥쥐>가 상영된 것을 계기로 연구자, 평론가 등을 중심으로 강태웅 감독을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2007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SICAF)에서 그에게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5년 향년 86세로 별세하였다. 올해 '엄마와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을 내놓은 박재범 감독 이전까지만 해도 강 감독이 한국의 유일한 장편 인형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는 게 영상자료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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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를 잡아먹지 말라"…신간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한 그림 속에 수염을 기르고 상투를 튼 한 남성이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이 남성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이고, 먹는 것은 살아있는 게다. 보기에도 야만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1924년 8월 매일신보에 보도된 이 그림은 일제가 제작한 포스터다. 포스터에는 가재와 게의 그림, 조선인들이 이런 것들을 잡는 모습과 잡아먹지 말라는 경고문도 들어있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토질', 즉 기생충 감염으로 목숨까지 잃는 폐디스토마가 확산하자 조사를 벌였다. 총독부는 조선인들이 가재와 동남참게를 날로 먹어 생긴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러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 포스터는 일제가 우리를 식민 통치하던 1915년부터 패망한 1945년 8월까지 제작하고 배포한 포스터 중 하나다. 저자인 청암대 최규진 교수는 신간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에서 식민 권력이 포스터를 활용해 어떻게 대중을 장악하려 했고, 일상생활을 재조직하려 했는지를 탐구한다. 최 교수는 책을 '전체사'(total history), 즉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분리된 틀을 뛰어넘는 역사 서술이라고 설명한다. 포스터에 담긴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사회적 맥락을 탐색하는 것이지, 단순하게 나열한 자료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제는 이른바 계몽 프로젝트, 즉 '문명화 기획'이라는 미명으로 식민지인들에게 열등감을 주어 저절로 순응하게 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위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피식민자의 저항 에너지를 누그러뜨리고 포섭을 강화하는 것도 그러한 사례다. 최교수는 "일제의 지배 수단은 총칼과 억압뿐이 아니다. 공중위생을 위하는 척 계몽하고, 유인하고, 설득하면서 생활 속으로 촘촘하게 파고들었다"면서 "포스터는 일상을 규율하는 강력한 선전 효과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신문 방송 등 일반 매체에 비해 포스터는 비용도 적게 드는 데다가 직접 눈에 간단하게 호소하는 효과가 있어 일제의 선전 도구로 자주 이용됐다. 일제는 1932년 무렵, 피폐한 농가경제를 되살려 체제를 안정시키려고 농촌진흥운동을 벌였다. 농민은 게으르고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새 삶을 살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이는 착취 메커니즘을 철저히 숨긴 채,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 세뇌정책이었다고 최교수는 분석한다. 일제는 모든 예술을 포함한 매체 등을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활용했다. 문학, 영화, 연극, 광고, 미술 사진 등을 활용해 선전을 퍼부었다. 선전전을 전투 수단의 최고봉이라고 여겼고, 라디오와 확성기가 '소리의 탄환'이라면 인쇄 선전물은 '종이 탄환'이라고 지칭했다. 공장, 집회소 등 대중이 많은 곳의 벽을 이용해 시사적인 내용의 글이 많이 들어간 포스터도 붙였는데 이는 '벽신문'이라고 불렸다. 당시 우리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계열에서도 벽신문을 활용하려 했으나 일제는 이를 금지했다. 최 교수는 10년이 넘는 기간 일제 강점기 신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와 문헌, 일본의 기록물에 실린 포스터를 샅샅이 훑어 모았다. 일제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포스터 외에도 식민지 역사를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역사'들의 소재가 담긴 포스터도 많이 찾아냈다. 민중 포스터와 저항 포스터 등 알려지지 않았던 식민지 시대 미세한 생활사의 영역도 담겼다. 최 교수는 "당시 인쇄술이 발전해 모든 포스터는 컬러였다. 일제는 많은 문맹인에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어주기 위해 이러한 포스터의 시각적 효과가 큰 점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서해문집.7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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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19)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노래 '부용산'이다. 박기동이 노랫말을 쓰고 안성현이 지었다. 안치환과 윤선애가 불러 세간에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다. 지난해 본 지면을 통해 '산동애가'를 다루면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다. 부용산 가사를 빼닮은 절명(絶命)의 노래라는 카피를 붙였던 이유가 있다. 마디마디 포개진 혹은 다 말하지 못했던 굴절의 역사, 사람들이 전율하는 선율과 장단 행간에 겹겹이 쌓인 질곡을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그 중심에 월북이란 오명을 달고 있는 안성현이 있고 좌익이라는 딱지를 달고 평생 감시 속에서 살았던 박기동이 있다. 박기동은 천재 문학소녀를 위해 초빙될 만큼 출중한 문학인이었다. 안성현은 가야금산조의 중흥조라고 하는 안기옥의 아들이기도 하다. 훗날 박기동은 <부용산>이라는 책을 냈다. 나주문화원에서는 <안성현 백서>를 출간했다. <백서>에 의하면, 김 종 시인 등 숱한 연구자들에 의해 광폭의 추적과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가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부용산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해방 직후 1948년, 지금의 목포여자고등학교 전신인 항도여중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있었다. 천부적인 문학소녀였던 모양인데 당시 교장이던 조희관이 이 학생을 위해 박기동을 교사로 초빙한다. 당시 목포는 수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폭발되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근대문학의 시작을 목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다종의 문학인들이 배출되었고 각종 문예대회가 열렸으며 예술공연이 펼쳐졌다. 박기동의 <부용산>(삶과꿈, 2002)에 의하면, 미네르바 다방 등지에서 박화성, 조희관 등 문학인들, 시인들, 평론가들, 음악가, 미술가 등 예술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문학을 논하고 시대를 말하며 노래를 불렀다. 각종 다방이며 술집이며 공적 공간들이 르네상스기의 살롱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항도여중 예술제>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박기동과 함께 안성현도 채용되었다. 가야금의 중흥조 안기옥의 아들이어서인지 천부적인 작곡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부임한지 8개월여 뒤 김정희가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팔방년 열여섯 나이였다. 안성현은 박기동의 습작노트에서 '부용산'이라는 시를 발견하고 곧바로 곡을 붙인다.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육자배기 선율에 얹어 절절한 심중을 담아낸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 <부용산>이다. 물론 이 시는 박기동이 항도여중에 부임하기 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썼던 습작이다. 여수 돌산이 고향인데, 큰누이 박영애가 어린 나이에 벌교로 시집갔다가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방년 스물 넷 꽃다운 나이였다. 안성현이 곡을 붙이자 박기동은 마지막 구절을 상여 나가는 소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노래를 제망매가에 견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배금순이라는 상급학생에 의해 초연된 이 노래는 항도여중 학생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애틋한 사연들이 날개를 달고 스토리텔링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빨치산, 월북, 좌익감시 등 파란만장한 분단의 시절들이 눈물과 핏물 속에서 구겨지고 찢겨지며 오늘에 이른 것,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다. 부용산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해방 직후 1948년, 지금의 목포여자고등학교 전신인 항도여중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있었다. 천부적인 문학소녀였던 모양인데 당시 교장이던 조희관이 이 학생을 위해 박기동을 교사로 초빙한다. 당시 목포는 수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폭발되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근대문학의 시작을 목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다종의 문학인들이 배출되었고 각종 문예대회가 열렸으며 예술공연이 펼쳐졌다. 박기동의 <부용산>(삶과꿈, 2002)에 의하면, 미네르바 다방 등지에서 박화성, 조희관 등 문학인들, 시인들, 평론가들, 음악가, 미술가 등 예술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문학을 논하고 시대를 말하며 노래를 불렀다. 각종 다방이며 술집이며 공적 공간들이 르네상스기의 살롱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항도여중 예술제>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박기동과 함께 안성현도 채용되었다. 가야금의 중흥조 안기옥의 아들이어서인지 천부적인 작곡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부임한지 8개월여 뒤 김정희가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팔방년 열여섯 나이였다. 안성현은 박기동의 습작노트에서 '부용산'이라는 시를 발견하고 곧바로 곡을 붙인다.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육자배기 선율에 얹어 절절한 심중을 담아낸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 <부용산>이다. 물론 이 시는 박기동이 항도여중에 부임하기 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썼던 습작이다. 여수 돌산이 고향인데, 큰누이 박영애가 어린 나이에 벌교로 시집갔다가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방년 스물 넷 꽃다운 나이였다. 안성현이 곡을 붙이자 박기동은 마지막 구절을 상여 나가는 소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노래를 제망매가에 견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배금순이라는 상급학생에 의해 초연된 이 노래는 항도여중 학생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애틋한 사연들이 날개를 달고 스토리텔링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빨치산, 월북, 좌익감시 등 파란만장한 분단의 시절들이 눈물과 핏물 속에서 구겨지고 찢겨지며 오늘에 이른 것,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다. 누이와 제자의 죽음을 애달파했던 상여소리 제망매가(祭亡妹歌) "죽고 사는 길이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 우리 향가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월명사(月明師)의 제망매가다. 누이의 죽음을 다룬 노래여서 '위망매영재가'라고도 한다. 양주동이 해석을 하였는데, 연구자들에 따라 약간씩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월명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제사하였더니),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지전(紙錢)이 서쪽으로 날아가 없어졌다. 하늘을 감응하게 하고 귀신을 감복시켰다는 향가의 주술력을 말하는 것이다. 박기동의 <부용산>에서도 향가의 전통을 승계한 숨결들이 포착된다. 한 가지에서 난 잎들이 가을 낙엽이 되어 떨어지나 우리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 누이는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마치 낙엽처럼 날아가 버린다. 월명사는 미타찰(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세계) 곧 종교적 초월을 빌어 누이와의 재회를 염원하는데 박기동은 부용산 봉우리 휘감아 도는 바람결을 통해 누이의 흔적을 좇는다. 안성현은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을 이 심상에 포개어 마치 남도의 만가(輓歌)같은 선율을 직조해 낸다. 어디 이것이 노래에 그치겠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월명사의 낙엽이기도 하고 벌교 부용산 봉우리를 맴도는 바람결 자체이거늘. 금지곡 <부용산>은 오래도록 우리 곁을 떠나있었다. 민족동란 전후기에 월북하거나 이른바 산사람이 된 이들이 많고 그들에 의해 많이 불리었기 때문에 문제 삼았던 것일 뿐이다. 새삼스럽게 <부용산>을 소환하는 것, 안성현의 월북은 월북대로 냉정하게 평가하되, 향가에서 김소월로 혹은 박기동으로, 고려가요에서 안성현의 선율로 이어지는 얼개는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굴절의 시기를 거치며 쌓은 우리의 내공이 탄탄하다는 점에서 <부용산>은 보다 널리 불릴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자신감이 교착된 남북의 물꼬를 트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부용산>은 남도의 육자배기다 박기동이 글을 짓고 안성현이 곡을 붙인 <부용산>은 한마디로 말하면 남도의 육자배기다. 육자배기의 전형적인 떨고 밀고 꺾는 선율로 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도전통의 시김새들이 새록새록 들어있다는 점도 그렇다. 죽음을 앞둔 빨치산들이 고향에 두고 온 누이며 부모며 형제자매들을 그리며 불렀던 한의 노래였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에서도 남도의 어느 옴팍진(오붓한) 다방에서 이 노래를 숨어 부르던 이들이 있었다. 좌익이라서가 아니라 이 노래 자체가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얼개나 음악적 결은 거슬러 올라 향가에 닿고 굽이쳐 올라 육자배기에 닿는다. 나주시립국악단 윤종호 감독은 늘 그렇게 주장한다. 단조 즉 마이너 기반의 계면조가 <부용산>뿐만 <엄마야 누나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어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요 <엄마야 누나야>는 김광수가 작곡한 것인데, 본래 안성현의 곡 <엄마야 누나야>는 전통음악 계면조 기반의 곡으로 사뭇 다르다. 가곡풍의 <부용산>을 굳이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를 남도창법의 계승으로 풀이하지 않으면 법고창신의 큰 줄기를 놓치는 잘못을 범하고 만다. <엄마야 누나야>뿐만 아니라 김정호의 <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노래들, 내가 이름 붙여둔 송가인이나 김태연의 '남도트로트' 창법에 이르기까지 <부용산>류의 법고창신에 대해서는 차차 고를 달리해 다루기로 하겠다. 오늘 막걸리 한잔 마시며 <부용산>을 불러봐야겠다. 1971년경 목포 예술인 공연 장면. 목포예총 제공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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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제14장 작사 배경, 한영서원 입학생을 위해국가(國歌) 애국가는 동·서·남해의 바다와 백두대간을 ‘무궁화 삼천리 우리나라’로 규정하고 충성을 다하자는 기원으로 시작한다. 가을하늘 밝은 달과 같은 불변의 기상으로 충성을 다 하자자고 맹세한다. 어떤 애국가보다 참신한 가사로 애국심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1907년 작사이니 116년간이나 ‘찬미가’ 10장 등과 길항(拮抗)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과연 이 역사적인 전승을 가능케 한 이 노래의 작사 배경은 무엇일까? 제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제2절 남산 위에 저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제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제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 애국가의 원본(原本)은 1908년 출판사 광학서포에서 발행한 1908년 윤치호 역술 재판 ‘찬미가’에 수록된 가사이다. ‘Patriotic Hymn’(애국적 찬미가) 전 4절은 다음과 같다. Patriotic Hymn 뎨十四 Auld Lang Syne 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히 보전하세 二 남산우헤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이슬 불변함은 우리 긔상일세 三 가을하날 공활한대 구름업시 놉고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四 이 긔상과 이 마 음으로 님군을 섬기며 괴로오나 질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그런데 이 가사가 실제 작사된 것은 ‘찬미가’에 발표에 앞선 1907년 작사했다는 문건이 존재한다. 이를 주목한 사실이 음악평론가 박은용(朴殷用, 1919~1985/1949년 월북)의 1948년 10월 6일자 동아일보 기사이다. "故 윤치호씨가 현재 아무리 불미한 입장에 있다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애국가를 작사한 사실까지를 무시하고 거짓으로 도산선생 작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 박은용의 이 주장 근거는 바로 1945년 9월 윤치호가 작고 직전에 가족의 요청으로 남긴 ‘자필 가사지(自筆 歌詞紙)’의 확인이다. 이에 따르면 4절 가사와 그 끝에 "一九0七年 尹致昊 作”이라고 기록하였다. 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二 남산우헤 저소나무 철갑을 두룬 듯 바람 이슬 불변함을 우리 긔상일세 三 가을하날 공활한대 구름업시 놉고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四 이 긔상과 이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야 괴로우나 질거우나 나라사랑 하세 윤치호의 막내 딸 문희가 "개성 부친을 방문하여 기념으로 ‘찬미가’를 옆에 높고 달라진 부분은 고쳐 직접 쓴 것”이다. 1945년에 썼지만 작사 년대는 1907년임으로 ‘作’이라 하였다. 서법상 "一九0七年 尹致昊 書”로 썼다면 위작이지만 옳은 표기이다. 이로서 ‘찬미가’에는 번역 찬송가 12편과 자신이 작사한 3편을 포함하여 일부 譯(번역)과 일부 述(지음)이란 의미로 ‘譯述’이라 했지만, 이 가사지에서는 제14장의 가사 4절만을 기록하여 ‘作’(작사)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또한 가사지의 철자에 대해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미 1908년 재판 ‘찬미가’에도 동일하게 썼음으로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치호는 이미 한글 철자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 즉, 1896년 1월호 「Korean Repository」에 필명 T. H. Y로 ‘점 찍기’와 ‘띄어쓰기’를 주장했고, 최근 필자가 확인 한 독립신문 1897년 5월 27일자는 ‘아래 아자’ 폐지를 주장한 기록에 확인이 되기도 했다. 이상에서 확인하였듯이 찬미가 제14장 현 애국가는 윤치호가 작사하였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제 윤치호가 어떤 배경에서 작사했는지를 살피기로 한다. 앞서 제시한 1907년 전후의 윤치호 상황을 전제로 정리하기로 한다. "내가 모은 돈 200달러를 당신께 보내오니 이 돈을 기초로 삼아서 조선에도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여 내가 받은 교육과 같은 교육을 우리 동포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만일 내가 상해로 가서 속히 조선으로 들어가면 내가 학교를 세우도록 할 것이요. 만일 나보다 먼저 조선에 가는 이가 있거든 그에게 부탁하여 학교를 세우게 하여 주되 5년이 지나도록 세우지 못하게 되거든 이 돈을 마음대로 처리해도 좋습니다.” 이 간절한 요청은 윤치호가 1893년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을 졸업하고 상해 모교 ‘중서서원’ 교수로 떠나면서 캔들러 교수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이다. 이미 이 시기에 학교설립을 계획했음을 알게 하는데, 어려운 유학 여건에서 모은 200달러를 학교 설립 기금으로 내고 캔들러 학장의 협조를 청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기독교 교육을 위한 이 계획이 당신의 뜻이라면 오! 하나님이시여. 어떤 것도 이 계획이 성공을 방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응답으로부터 13년만인 1906년 초, 캔들러 학장은 남부 감리교 감독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 때 윤치호와의 약속을 실천하게 되었다. 결국 윤치호의 염원이 미국 남부 감리교 계열 미션 스쿨의 지원으로 ‘한영서원’(韓英書院, Anglo-Korean School)의 개교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당연히 초대교장은 윤치호가 맡게 되고, 첫 해 14명의 학생을 맞아 개교하였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 교가(校歌) 곡조에 윤치호가 작사한 "하나님을 공경하고 동포사랑은···”로 시작하는 교가를 준비하고, 이상춘과 김동성(金東成) 등의 교사와 함께 개교 하였다. 개성 송악산 산지현에 초가지붕을 얹은 뜸집(띠나 따위로 지붕을 이어 간단하게 지은 집)의 학교 개교식은 10월 3일 개최했다. 한영서원 학칙에 의하면, 한영서원은 인문교육 및 실업교육을 하는 곳으로 학과는 소학과 4년, 영어전수과 2년, 고등과 3년, 반공과(半工科) 3년 등의 과정이 있었다. 소학과에서는 수신, 국어, 한문, 역사, 일어, 산술, 이과, 도화, 창가, 체조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고, 고등과에서는 도덕, 국어, 한문, 역사, 일어, 수학, 영어, 음악, 체조, 지리, 도화, 작문, 과학을 가르쳤다. 반공과는 고등과에다 실업과목을 더해서 가르쳤고, 일주 27시간의 수업을 하였다. 학생은 15세 이상의 남자로 신체건강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보통 국한문에 통달한 자로 하였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지원, 즉 분교도 운영하였다. ‘한영지서원(韓英支書院)’인데, 경기도 포천에 두고 민족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본교와 같이 실업 교육 중시, 근로정신 고취, 노동 천시 폐습 타파 등을 통해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설립 목적이 민족의식 고취와 민족 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을 목적으로 하였음으로, 포천 지역의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사용 금지령을 내렸던 ‘초등본국역사’를 교육하는 한편 ‘영웅의 모범’이라는 애국창가집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이런 교육목표와 실제 수업은 1910년 이후 총독부의 감찰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개교식 당시는 입학생이 14명이었으나, 1908년에는 225명으로 확대되었다. 이 해에 9월에는 대지 120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웅장한 현대식 석조 건물로 교사를 신축하였다. 그러나 총독부는 이런 학교의 확대를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1911년 초대교장 윤치호를 105인 사건으로 투옥시키고 교장을 교체시켰다. 1913년 2월 10일 크램(W.G. Cram)으로, 3대 교장으로 1914년 9월 1일 왓슨(A.W. Wasson)을 취임시켰다. 윤치호의 활동상을 최대한 압박한 것이다. "윤치호는 고(故) 남작 윤웅렬(尹雄烈)의 장남으로 어려서 도쿄(東京)에 유학가고, 그 후 상해에 가서 영어를 배운 후 미국에 도항(渡航)하여 그곳에서 유학한 지 5년 후 귀국하여 의정부참의(議政府參議), 학부협판(學部協辦)이 되고 그 다음 외부협판(外部協辦)으로 전임하여 제1차 한일협약(1904) 성립의 결과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개성 한영서원(韓英書院),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 등에서 원장 및 교장을 맡고 있으면서, 위의 협약(한일협약, 1904) 체결에 대해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1911년 ‘신민회 105인 사건’의 윤치호 판결문의 일부이다. 윤치호의 주요 이력 중에 한영서원 원장과 대성학교 교장 엮임을 주목하였음이 확인 된다. 이런 처지에서 한영서원은 이후에도 일제의 감찰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로 ‘애국창가 사건’도 적발되었다. "당시 이경중 목사가 동간도에서 수집, 보관하고 있던 창가를 한영서원 교사 신영순, 이상춘이 제공받은 다음, 윤치호가 지은 ‘애국가’를 포함하여 2권의 창가집으로 발간했다고 한다. 제1권은 1914년 8월 25일 40부를 인쇄하여 한영서원 및 호수돈여학교 생도에게 발매·반포했고, 이어 제2권은 1915년 9월 90책을 인쇄·반포 하였다.” 1916년에 발생한 ‘애국창가집사건’에 대한 경기도 경무부 보고 ‘불온자 발견처분 건’ 보고서의 일부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개성경찰서 순사가 한영 서원에서 불온창가를 출판, 반포한다는 정보를 입수, 조사한 결과, 1915년 8월 15일 해당 출판물의 일부가 발견되면서 비롯되었다. 국가 흥망성쇠의 열쇠가 곧 국민정신에 있다고 인식하고, 국민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조국을 생각하는 노래, 독립군가, 애국가를 모아 창가집을 만들었다. 내용에는 ‘영웅의 모범’, ‘선죽교’, ‘구주전란’ 등 다양하였으나 그 중에는 일본의 황제나 황가에게 모욕적인 내용을 담은 곡이나 역대 영웅적인 인물의 반일사상을 표현한 곡들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사인 외 6명은 창가의 편찬에 관여한 혐의, 전 교사 유봉은 그 재료를 제공한 혐의, 음악교사와 생도들은 창가를 연주한 행위, 신공량은 타인에게 창가집을 증여하고, 오립아·오연거는 창가집을 호수돈여학교 생도에게 발매·배포한 혐의를 받았다. 신영순·백남혁은 징역 1년 6개월, 정사인·오진세·이경중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한영서원 교사·교직원·졸업생·재학생 등 23명이 고초를 겪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애국창가집사건’으로 탄압 받은 첫 사례이다. 그런데 이 중에 핵심 애국창가는 바로 애국가였다. 조서에 언급되었듯 "윤치호가 지은 애국가로부터 ‘애국 창가’를 모아 노래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윤치호’, ‘한영서원’, ‘애국가’, ‘창가사건’은 결국 윤치호의 애국가로부터 발단 된 것임을 알게 한다. 이상에서 살핀 바에 의하면 관직을 떠나 계몽운동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한 1905년으로부터 1911년까지의 5년은 결국 한영서원을 설립하고, 대성학교 교장직을 겸하는 과정이 가장 큰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으로 1907년에 애국가를 작사한 것은 바로 학생들, 구체적으로는 1906년 10월 입학한 한영서원 학생들을 위해 새로운 애국적 찬미가 14장을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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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장성 전국국악경연대회 (11/25)※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 목적 세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선비정신이 살아 숨 쉬는 장성, 호남지방의 유종으로 추앙받는 김인후 선생의 고장 장성! 특히, 김인후 선생님의 후손으로 고제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김은숙 명인을 배출한 장성에서 선비의 풍류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일환으로 제5회 전국 국악 경연대회를 개최하고자 한다. ■일자 : 2023년 11월 25일 09:00 ~ 17:00 ■장소 : 장성군 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소극장 ■부문 : 1) 가야금병창 2) 판소리 ■주최 : 장성군 ■주관 : 사)매헌전통예술보존회 ■후원 : 전라남도, 전라남도 교육청, 장성 교육 지원청 ■ 경연종목 : 1) 가야금병창 2) 판소리 ■ 경연방법 : 부문별 순서에 따라 경연 ■ 일시:2023년 11월 25일 (토) 09:00 ~ 17:00 ■ 방법 : 신청서 접수 순서대로 지정된 시간 동안 경연 ■ 접수 및 참가신청 ■이메일 : maeheon159@naver.com 참가신청서는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 ■장성전국국악경연대회(카페) https://cafe.naver.com/1028jino ■(주)국악신문사 www.kukak21.com 제출기한 : 2023. 11. 6. (월) 09:00 ~ 2023. 11. 20 (월) 18:00까지 도착분에 한함 문의사항 : 010-5916-5335, 010-3640-0556 ■ 참가자격 ■ 일반부 : 전국 성인 남/여(대학생 포함) ■신인부 : 전국 성인 남/여(전공자 제외) ■학생부 : 초/중/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자 ■ 제출사항 ■학생 : 참가신청서(사진부착), 학생증 ■신인/일반 : 참가신청서, 신분증 - 참가비 : 없음 - 지정 고수비 : 없음 ※ 지정 고수 대신 개인 고수를 대동할 수 있음 ■ 경연방법 경연 순서대로 1명씩 나와서 경연 한복을 입고 고수와 함께 진행 각 분야별 경연 순서는 접수 순서대로 진행 경연 도중에는 본인 소개 금지하며 인사 후 바로 진행 ■ 경연시간 구분 일반부 고등부 신인부 중등부 초등부 시간 6분 5분 3분 4분 3분 ■경연 시간은 심사위원들의 재량으로 변경될 수 있음 ■심사집계가 완료되면, 심사집계표 공개 심사계획 ■ 심사위원 : 각 부문의 예능보유자 및 이수자, 대통령상 수상자 ■ 심사회피 : 참가자는 직접 스승이나 8촌 이내의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경우 심사 회피 신청을 해야 하며, 심사 회피 약관에 동의하여야 한다. 만약 심사 회피를 신청하지 않고 수상을 한 후, 회피 신청 사유가 있었음이 발견될 경우 본 주최/ 주관단체는 수상 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는 해당 상장 및 상금을 반환해야 한다. ■ 동점자 처리 : 채점 결과 동점일 경우에는 연장자순으로 하고, 경합일 경우 심사위원장이 심사위원과 합의하여 결정한다. ■ 결과공개 : 심사위원별 점수를 집계 마감 후 당일 게시판에 공개한다 ■ 심사 항목 및 기준 ■심사항목(100점 만점 기준) 구분 공력 박자 음정 자세 점수 30점 30점 30점 10점 - 본 대회 심사기준은 아래와 같다. ■예선 최저 90, 최고 99점 ■본선 최저 95, 최고 99점 ■ 심사일정 : 2023년 11월 25일 (토) 시간 내용 비고 08:30~09:00 국민의례 및 심사회의 09:00~12:00 가야금병창 및 판소리 예선경연 초-신-중-고-일반 순 12:00~13:00 점심시간 13:00~15:00 가야금병창 및 판소리 본선경연 고-일반 순 15:30~15:50 종합 결승 일반부 부문별 1명씩 경연 16:00~16:20 축하공연 16:30~17:00 시상식 ■ 시상내역 ※ 상금 125,000 이상 수상자는 소득세 8.8% 공제 후 지급합니다. (시상내용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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